패션을 예술로 만든 남자, 알렉산더 맥퀸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 1969년 3월 17일 ~ 2010년 2월 11일)은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패션계에서 ‘악동’이자 ‘천재’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패션을 단순한 의복의 영역이 아닌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끌어올린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 패션 하우스 지방시(Givenchy)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설립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알렉산더 맥퀸의 초기 작품은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옷에 대한 모독”으로 비쳤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시대를 앞선 천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논란은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패션계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처와 열정으로 시작된 어린 시절
알렉산더 맥퀸은 영국 런던에서 택시 운전사 아버지를 둔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패션 화보집을 들고 다니며 옷을 바라보는 데 몰두하였고, 또래 아이들로부터 ‘맥퀴어(McQueer)’라는 조롱을 받으며 심한 따돌림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깔린 어둡고 날 선 감수성의 근원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결국 학교를 중퇴하였고, 16세의 나이에 런던 새빌 로(Savile Row)에 위치한 최고급 맞춤 양복점에서 견습생으로 패션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앤더슨 & 셰퍼드(Anderson & Sheppard)’로 옮겨 본격적인 영국식 테일러링 기술을 습득하였다. 이 시기 그는 재단과 구조에 대한 감각을 빠르게 체득하며, 훗날 자신의 디자인을 지탱하는 탄탄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후 ‘기브스 앤드 호크스’, 무대의상 전문업체 ‘엔젤스 앤드 버먼스’ 등에서 일하며 역사적 의상과 극적인 실루엣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19세기 의상과 연극 무대 경험은 그의 디자인에 서사성과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운명적 만남
1994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에 진학하였고, 이곳에서 본격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았다. 새빌 로에서 익힌 테일러링과 학교에서의 실험적 디자인 교육이 결합되며, 알렉산더 맥퀸만의 독창적인 세계가 완성되었다.
1992년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를 모티프로 한 졸업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패션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이사벨라 블로의 눈에 들었고, 그녀는 졸업 작품 전부를 구매하며 맥퀸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이사벨라 블로는 그에게 브랜드 설립을 권유하였고, 그의 이름 ‘알렉산더 맥퀸’을 라벨로 사용하도록 이끌었다.
범스터 팬츠와 패션계의 충격
졸업 이후 발표한 첫 컬렉션부터 그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1994년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범스터(Bumster) 팬츠는 극단적으로 낮은 밑위 디자인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이후 로 라이즈 팬츠 유행의 시초로 평가되며, 알렉산더 맥퀸을 단숨에 패션계의 문제적 인물로 만들었다.
이후 ‘Nihilism’, ‘Highland Rape’, ‘Banshee’ 등 발표하는 컬렉션마다 사회적·역사적 폭력을 은유적으로 풀어내며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충격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디자이너였다.
지방시 시절과 디자이너로서의 성장
1996년 그는 정체기에 빠진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되었다. 당시 LVMH 그룹은 젊은 디자이너들을 대거 기용하며 하우스 리뉴얼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맥퀸과 지방시의 궁합은 순탄하지 않았다. 데뷔 컬렉션은 혹평을 받았고, 하우스와의 미적 충돌도 잦았다.
그럼에도 이 시기는 그의 디자이너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지방시 아틀리에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부드러움과 장식성, 오트 쿠튀르 기술을 흡수하며 자신의 거친 감각을 한층 정제하였다.
2001년 그는 지방시를 떠나 자신의 브랜드에 전념하였고, 파리 무대에서 다시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쇼를 예술로 만든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에게 패션쇼는 단순한 발표의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예술 작품이었다. 모델, 음악, 무대, 조명, 퍼포먼스가 결합된 그의 쇼는 설치미술에 가까웠다.
잉크가 담긴 바닥 위를 걷는 모델, 폭설 속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케이트 모스 등 그의 무대 연출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는 옷을 통해 시대와 인간, 폭력과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하였다.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남겨진 유산
2010년 2월, 알렉산더 맥퀸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사벨라 블로의 자살과 어머니의 죽음 등 연이은 상실은 그에게 깊은 우울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은 패션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브랜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오랜 어시스턴트였던 사라 버튼(Sarah Burton)이 뒤를 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고, 맥퀸 특유의 낭만성과 페티시즘을 보다 섬세하고 여성적인 언어로 재해석하며 브랜드를 이어가고 있다.
알렉산더 맥퀸은 패션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면하게 한 디자이너였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질문은 쉽게 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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