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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선 이름, 롤렉스가 럭셔리 시계의 기준이 된 이유

marginata 2026. 1. 7. 12:13

시간을 넘어선 이름, 롤렉스가 럭셔리 시계의 기준이 된 이유

롤렉스(Rolex)는 단순한 시계 브랜드가 아니다. 오늘날 ‘럭셔리 시계’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한 이름에 가깝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이 브랜드는 정밀성, 내구성, 그리고 상징성을 모두 갖춘 시계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롤렉스의 시작은 의외로 스위스가 아닌 영국 런던이었다. 1905년, 독일 출신 사업가 한스 빌스도르프는 처남 앨프리드 데이비스와 함께 ‘빌스도르프 앤드 데이비스(Wilsdorf and Davi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이들의 사업은 스위스에서 무브먼트를 들여와 영국에서 제작한 케이스에 장착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초기 제품들은 지금처럼 브랜드 중심이 아니라, 보석상 이름이 다이얼에 새겨지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1908년 빌스도르프는 시계 브랜드로 사용할 이름으로 ‘Rolex’를 등록했다. 그는 이 이름이 어느 언어권에서도 발음하기 쉽고, 시계 다이얼 위에 올려두기에도 적당히 짧으며, 시계를 감을 때 나는 소리와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브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빌스도르프는 높은 세금과 관세 부담을 피해 회사를 스위스 제네바로 옮겼다. 이로써 롤렉스는 명실상부한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되었고, 기술 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롤렉스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린 핵심은 단연 기술 혁신이다. 1926년, 롤렉스는 완전 방수·방진 구조의 손목시계인 ‘오이스터(Oyster)’ 케이스를 선보였다. 당시 손목시계는 습기와 먼지에 취약한 것이 큰 약점이었는데, 오이스터 케이스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롤렉스는 이 기술을 단순히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27년 영국 수영 선수 메르세데스 글라이츠는 목걸이에 오이스터 시계를 착용한 채 영국 해협을 건넜으며, 시연을 위해 오이스터 모델을 수족관에 담가 주요 판매 지점의 진열창에 전시하는 등 과감한 마케팅으로 신뢰를 쌓았다.

 

1931년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발명이 등장한다. 중력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이는 반원형 플레이트인 ‘퍼페추얼 로터(Perpetual rotor)’ 시스템이다. 사용자의 움직임만으로 시계가 계속 작동하도록 만든 이 기술은 현대 자동시계의 기준이 되었고, 이후 롤렉스의 대표 라인명인 ‘오이스터 퍼페추얼’로 이어졌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브랜드의 미래 또한 치밀하게 준비했다. 1944년 아내의 사망 이후, 그는 롤렉스의 지분 전부를 ‘한스 빌스도르프 재단’에 귀속시켰다. 이 구조 덕분에 롤렉스는 지금까지도 가족 기업이나 대기업 산하 브랜드가 아닌, 독립적인 재단 소유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수익의 일부는 자선 활동에 사용되며, 단기 실적보다 장기적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이 가능해졌다.

 

현재 롤렉스는 크게 오이스터 퍼페추얼 라인, 프로페셔널 라인, 그리고 드레스 워치 계열인 첼리니 라인으로 구성된다. 서브마리너, 데이토나, GMT 마스터 II 같은 모델들은 단순한 시계를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빈티지 롤렉스 시장은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할 만큼 강력하며, 특정 모델은 수천만 달러에 경매 낙찰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폴 뉴먼 데이토나’다. 1968년에 제작된 이 시계는 경매에서 1,7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며, 손목시계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한때 200달러 수준에 판매되던 시계가 수십 년 만에 상징성과 스토리를 더해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게 된 셈이다.

 

롤렉스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비싸서가 아니다. 방수, 자동 무브먼트, 내구성, 브랜드 관리까지 시계가 ‘도구’에서 ‘상징’이 되는 모든 과정을 가장 먼저, 가장 완성도 높게 구현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렉스는 지금도 단순한 시계 브랜드를 넘어, 성공과 신뢰, 그리고 시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