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햇빛에서 태어난 브랜드, 자크뮈스
오늘날 패션계에서 가장 선명한 개성을 지닌 브랜드 중 하나인 자크뮈스(Jacquemus).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목을 받고있다. 이 브랜드의 시작과 성장 과정은 디자이너 개인의 삶과 감정, 그리고 태도가 그대로 녹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자크뮈스는 남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말레모르에서 자랐다. 18살이 되더 해에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파리 에스모드(ESMOD/École supérieure des arts et techniques de la mode)에 입학했으나 3개월 만에 중퇴하였다. 정규 패션 교육을 끝까지 마치지 않았고, 패션계의 전통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지도 않았던 그는 시티즌 케이에서 3개월간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경력을 먼저 쌓았다. 파리에서의 불안정한 생활과 현장경험은 밑거름이 되어 강한 직관을 바탕으로 자크뮈스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도록 해주었다.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 는 2009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를 설립했다. 브랜드명 ‘Jacquemus’는 그의 어머니 성에서 따온 것으로, 처음부터 이 브랜드가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자크뮈스는 2012년 파리 패션 위크에 데뷔한 최연소 디자이너가 되었다.
자크뮈스의 초기 컬렉션은 투박하고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 남부, 특히 프로방스 지역의 햇빛과 자연, 시골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래서 자크뮈스의 옷은 늘 햇살에 바랜 듯한 컬러,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은 실루엣, 과장되지 않은 관능성을 품고 있다. 이는 도시적이고 계산적인 파리 패션과는 다른 결의 미감이었다.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알린 계기는 SNS 시대와 정확히 맞물린 감각적인 비주얼 전략이었다. 자크뮈스는 인스타그램을 단순한 홍보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무드 보드처럼 활용했다. 모델들이 들판을 걷거나, 푸른 하늘 아래 서 있거나, 기하학적인 공간에 놓인 장면들은 컬렉션 그 자체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자크뮈스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브랜드’라는 별칭을 얻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브랜드의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미니멀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작은 사이즈의 가방 ‘르 치키토(Le Chiquito)’는 실용성을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이 가방은 “쓸 수 없을 만큼 작다”는 농담과 함께 SNS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자크뮈스를 글로벌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례는 자크뮈스가 기능보다 이미지와 메시지를 얼마나 영리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자크뮈스의 쇼 역시 브랜드 스토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라벤더 밭 한가운데 놓인 핑크색 런웨이, 밀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얀 통로, 해안 절벽 위의 미니멀한 무대 등은 단순한 패션쇼를 넘어 하나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그는 패션쇼를 “옷을 보여주는 자리이자 감정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인식했고, 그 철학은 쇼 연출 전반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디자인적으로 자크뮈스는 단순함과 대담함을 동시에 추구한다. 노출이 있지만 노골적이지 않고, 구조적이지만 차갑지 않다. 프랑스 특유의 여유와 젊은 세대의 솔직함이 공존하는 디자인은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과거 하이패션이 지녔던 거리감 대신,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런웨이”를 구현했다는 점도 브랜드의 강점으로 꼽힌다.
한편, 자크뮈스는 비교적 독립적인 브랜드 운영을 고수해 왔다. 대형 럭셔리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글로벌 유통과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이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흐리지 않으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반영된 선택으로 해석된다.
결국 자크뮈스는 거창한 철학이나 복잡한 이론보다,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이미지를 정확히 포착해낸 브랜드라 할 수 있다. 프랑스 남부의 햇빛처럼 따뜻하고, 때로는 장난스럽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방향성과 감각이 존재한다. 자크뮈스가 단기간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유는, 패션을 통해 ‘이야기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타일 스토리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형태를 넘어 몸과 공간을 잇다, 이세이 미야케 (1) | 2026.01.08 |
|---|---|
| 산에서 시작해 럭셔리로 완성된 패딩의 역사, 몽클레어 (0) | 2026.01.08 |
| 기술로 완성된 아웃도어의 정점, 아크테릭스 (0) | 2026.01.07 |
| 시간을 넘어선 이름, 롤렉스가 럭셔리 시계의 기준이 된 이유 (0) | 2026.01.07 |
| 조나단 앤더슨의 2026 디올 (1) | 202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