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를 넘어 몸과 공간을 잇다,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그의 이름을 딴 명품 패션 하우스이다. 전통과 혁신,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패션 사유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브랜드이다. 시대를 앞서간 실험 정신과 사람의 움직임을 중시한 옷이라는 철학은, 브랜드 설립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三宅 一生, 1938~2022)는 일본 아트·디자인 교육의 전통과 서구 패션 교육을 동시에 경험한 드문 세대였다. 그는 다카다노바바에 위치한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뒤, 파리와 뉴욕으로 건너가 당시 패션의 중심지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주목한 것은 ‘의복이 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라는 부분이었다.
1970년대 초반, 이세이 미야케가 귀국해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설립했을 때, 그가 내건 화두는 “옷은 형태만이 아니라 움직임과 관계의 문제”였다. 당시 패션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클래식한 구조로 상류 사회의 규범을 상징하던 프랑스·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다른 하나는 미국식 실용성과 대중성을 강조하는 스포츠웨어였다. 이세이 미야케는 이 두 가지를 단순히 ‘조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옷이 입는 사람의 바디와 공간을 어떻게 함께 호흡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풀어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형태 실험과 옷의 구조 재해석이다. 미야케는 ‘주름(pleats)’을 통한 형태 실험을 가장 극명하게 선보였는데, 그 대표작이 바로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라인이다. 이 시리즈는 전통적인 봉제 방식 대신 열과 주름을 통해 옷의 구조를 고정하는 "가먼트 플리팅(garment pleating)" 기술을 적용했다. 결과는 혁신적이었다. 옷은 자유롭게 늘어났다 줄어들었고, 몸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도 마치 패션과 기술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오브제처럼 보였다. 플리츠 플리즈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주름에 옷을 처음 적용한 브랜드로 중년 여성들이 주 타겟이었지만 현재는 남성들도 많이 입고있다. 스티브 잡스의 상징적인 검은 목폴라를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이세이 미야케이다.
패션을 ‘입는 예술’로 해석한 또 다른 실험은 신체와 공간의 확장이었다. 미야케는 전통적인 스커트, 재킷, 코트의 형태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옷이 입는 사람의 신체 구조와 일상의 움직임을 포착하려 했다. 패션쇼에서도 이 접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무대 위 모델들은 단순한 옷의 전시자가 아니라, 옷을 매개로 경험을 확장하는 퍼포머처럼 행동했다. 이런 실험적 무대는 때로는 패션계에서 ‘과격한 예술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가 전통적 의미의 ‘명품 하우스’와 차별화된 또 하나의 이유는 기술과 인간의 결합에 대한 집요한 태도였다. 단지 물질적 가치로서의 고급 원단이나 장인 기술만을 쫓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소재 개발과 기능성에 대한 탐구가 브랜드 DNA의 중심에 있었다. 이는 기능주의와 미학적 실험주의가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혁신적인 주름 가공 방식, 신축성과 회복성이 높은 소재, 그리고 입는 이의 움직임을 고려한 입체 패턴 등은 모두 이 철학이 구체화된 산물이었다.
미야케는 패션 산업의 틀을 깨는 동시에, 패션이 단지 ‘옷을 파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간 경험을 설계하는 활동이라는 관점을 확고히 했다. 이는 브랜드가 글로벌 스테이지에서 지속해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1980~1990년대에는 플리츠 플리즈 외에도 Homme Plissé, A-POC(A Piece of Cloth) 같은 실험적 라인으로 전 세계 패션 커뮤니티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이세이 미야케는 기술과 감각을 동시에 확장하는 방향을 멈추지 않았다. ‘옷은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은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패션 자체를 재정의하는 과정이 되었다. 미야케의 접근은 21세기의 패션이 인간과 사회, 기술 간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했다.
가방이 주력 상품인 바오바오(Bao Bao)는 이세이 미야케의 라인으로 원래는 플리츠 플리츠 이세이 미야케 라인의 가방 상품으로 선보여졌으나, 2000년 FW 시즌부터 독자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삼각형 조각이 퍼즐처럼 붙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데일리 백으로 인지도가 높은 라인이다.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의 영향력은 패션계 내에서 끝나지 않았다. 건축, 산업 디자인, 퍼포먼스 아트 등 다양한 분야가 그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미야케의 실험은 패션을 경계 없이 확장할 수 있는 하나의 창조적 실천으로 자리 잡았다. 미야케의 철학은 오히려 ‘무엇을 입을 것인가’라는 일차원적 질문을 넘어, 옷이 인간의 행동과 생활을 어떻게 확장하고 반영할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설립한 브랜드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여전히 ‘패션의 개념을 확장하는 실험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든, 이세이 미야케는 언제나 형태와 움직임, 인간의 몸과 공간을 잇는 옷을 고민해왔고, 그 질문은 오늘날에도 또 다른 실험과 창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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