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완성된 아웃도어의 정점, 아크테릭스
아크테릭스(ARC’TERYX)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아웃도어 브랜드로, 기능성 의류의 정점에 서 있는 브랜드이다. 현재는 아머 스포츠를 거쳐 중국 안타 스포츠 그룹 산하에 속해 있지만, 브랜드가 지켜온 철학과 기술 중심의 정체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름부터가 ‘혁신’을 상징하는 시조새에서 따왔듯, 아크테릭스는 처음부터 유행보다는 성능, 디자인보다는 구조와 기능에 집중해 온 브랜드이다.
아크테릭스가 특히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고어텍스를 활용한 하드쉘 자켓이다. 가볍지만 내구성이 뛰어나고, 방수와 투습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높은 수준에서 동시에 만족시키는 제품들로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격대는 결코 낮지 않지만, 실제 산악 환경이나 극한의 기후에서 성능 차이를 경험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확고한 신뢰를 얻으며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철저히 전문 아웃도어에 뿌리를 둔 브랜드가 최근 들어 일상복과 패션 영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프코어 트렌드의 확산과 함께 아웃도어 웨어가 도시 패션으로 스며들었고, 여기에 아크테릭스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압도적인 기술력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특히 2020년 파리 패션쇼에서 버질 아블로가 아크테릭스 자켓을 착용하고 등장한 장면은, 이 브랜드가 더 이상 산과 설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이후 베일런스(Veilance) 라인을 중심으로 ‘기술 기반의 일상복’이라는 새로운 방향성도 분명해졌다.
한국에서는 아크테릭스를 일상 패션으로 소비하는 모습이 비교적 자연스럽다. 전문적인 하이커나 클라이머가 많지 않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최고급 아웃도어 장비가 꾸준히 판매되는 이유는 결국 ‘성능 그 자체’보다는 브랜드가 가진 신뢰도와 상징성에 있다. 잘 정비된 등산로와 캠핑장에서도 극한 환경을 상정한 옷을 입는 모습은 아이러니해 보일 수 있지만, 고급스럽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려는 소비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때로는 과도한 유행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과거 노스페이스나 스톤 아일랜드처럼 특정 연령대에서 과열 소비가 일어나며 브랜드 이미지가 흔들린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크테릭스는 로고 플레이가 강하지 않고 디자인이 절제되어 있어, 단순 과시 소비로 급격히 소모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많다. 더구나 북미와 유럽에서는 여전히 ‘아웃도어 장비’로서의 위상이 확고해, 지역적 유행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다.
브랜드의 시작은 매우 전형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의 탄생 서사와 닮아 있다. 1989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활동하던 댄 그린과 데이브 레인은 기존 장비의 불편함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장비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아크테릭스의 전신인 ‘락 솔리드’였다. 초기에는 소규모 공장에서 하네스를 제작하며 출발했지만, 1992년 선보인 베이퍼 하네스는 착용감과 구조 면에서 기존 제품들과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업계의 기준을 바꿔놓았다.
이후 베이퍼 공법은 가방과 의류로 확장되었고, 1994년 등장한 보라 백팩은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구조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어 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 아크테릭스는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의류 개발에 나서며 고어텍스와의 협업을 통해 전설적인 하드쉘 자켓들을 탄생시켰다. 알파 SV, 세타 AR 같은 모델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기술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특히 심테이핑 폭을 줄여 무게를 낮추고 투습력을 높인 기술, 세계 최초로 의류에 적용된 방수 지퍼, 봉제 횟수까지 집요하게 계산한 마이크로 심 공법 등은 아크테릭스가 ‘기술에 집착하는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게 만든 핵심 요소였다. 실 한 가닥의 무게까지 줄이려는 태도는, 브랜드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스키와 스노우보드 영역으로 확장하며 사이드와인더 자켓처럼 입체적인 구조 설계를 선보였고,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수준의 하이테크 아웃도어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며 품귀 현상이 반복되고있다.
인기가 높아진 만큼 가품 문제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정가보다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는 제품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외형은 비슷해 보일 수 있어도, 아크테릭스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기술력까지 흉내 내기는 어렵다.
기술 중심으로 성장한 브랜드가 규모가 커지며 품질보다 브랜드 가치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크테릭스는 아직까지는 합리적인 선에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인기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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