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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Hermes) 브랜드 스토리

marginata 2026. 1. 26. 21:44

에르메스(Hermès)는 오늘날 세계 최고급 럭셔리 하우스로 손꼽힌다.

1837년,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는 프랑스 파리에 작은 공방을 세웠으며, 자신의 이름을 따서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공방은 말을 위한 마구를 제작하는 곳이었다. 당시 상류층이 이용하던 마차의 안장과 고삐 같은 가죽 장비를 만드는 업체였기 때문에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의 가장 오래된 상징은 여전히 마차와 말,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다. 지금도 에르메스의 로고는 말이 끄는 마차와 이를 인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로고는 브랜드의 기원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19세기 말, 유럽의 교통 환경은 변하기 시작한다. 말과 마차 중심에서 자동차, 철도, 여객선으로 이동 수단이 바뀌면서 마구 전문 브랜드였던 에르메스도 점차 방향을 전환한다. 단지 가죽을 다루는 기술력 하나만으로도 이미 명성을 쌓아온 브랜드였기에, 에르메스는 자연스럽게 여행을 위한 가죽 트렁크, 가방, 액세서리 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이동 방식 변화에 맞춰 “말을 위한 마구”에서 “사람을 위한 여행용 가죽 제품”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그들이 지킨 것은 고급 소재와 장인 정신이었다.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의 공방은 그의 아들 샤를 에밀에게로, 다시 그 아들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에게로 승계되었다.  그러나 에밀 모리스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사위 로베르 뒤마(Robert Dumas)에게 기업이 넘어가면서 에르메스는 뒤마 가문 시대를 맞게 된다. 이 뒤마 가문은 브랜드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든 가문이며, 이후 로베르의 아들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는 에르메스를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럭셔리 하우스로 성장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늘날 에르메스는 여전히 창업 가문의 피가 흐르는 인물들이 경영을 맡고 있다. 회장인 악셀 뒤마(Axel Dumas)는 장 루이의 조카이며,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는 장 루이의 아들이다. 6세대에 걸친 이러한 가족 경영 체제는 에르메스를 거대 럭셔리 그룹에 편입되지 않은 채, 독립성과 철학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핵심적 기반이다.

 

에르메스는 장인 정신과 제품 철학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1837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브랜드는 창작의 자유, 최상의 소재에 대한 집착, 오래 사용될 수 있는 실용성, 그리고 장인의 손에서 탄생하는 우아한 오브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브랜드는 현재 45개국에 3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생산만큼은 여전히 프랑스 내의 50여 개 공방에서 이루어지도록 고수하고 있다. 세계적인 하우스임에도 불구하고 대량 생산과 외주 생산이 아닌 ‘집중된 제작 방식’을 택하는 셈이다.

 

이런 고집스러움은 기업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에르메스는 늘 가족 경영, 자립적 운영,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추구해 왔다. 동시에 장인 정신, 창조성, 혁신, 책임감을 기업 정신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에르메스는 단순한 럭셔리 제품 생산 기업이 아니라, 일종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공방이자 문화적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 점은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에르메스는 한때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 LVMH의 공격적 인수 시도 대상이었다. LVMH는 공시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파생상품 방식을 이용해 은밀하게 에르메스 지분을 17% 이상 확보했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에르메스는 이를 ‘정통과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하며 법정과 주식시장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결국 에르메스는 가문이 지분을 모아 지주회사를 신설하고 악셀 뒤마를 CEO로 선임하며 지배권을 재확립했다. 2014년 LVMH는 법원 명령에 따라 보유 지분을 매각하며 사건이 마무리되었고, 에르메스는 다시금 독립 명가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에르메스를 ‘돈으로 살 수 없는 하우스’로 상징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에르메스는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지만, 이들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 이유는 단순히 가격 때문이 아니다. 에르메스는 유통업계에서 유치 1순위로 꼽히는 브랜드이며, 입점 기준이 무척 까다롭기 때문에 에르메스를 들여오는 것 자체가 백화점의 자존심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화려한 로고 플레이나 마케팅에 의존하는 반면, 에르메스는 거의 마케팅을 하지 않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에르메스에는 마케팅 부서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에르메스는 유명인을 적극적으로 광고 모델로 기용하지 않으며, 앰배서더 시스템도 거의 없다. 에르메스를 보증하는 것은 유명인의 이름이 아니라 브랜드 자체라는 철학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에르메스를 특별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가방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버킨 백과 켈리 백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명품 가방 중 하나지만, 돈만 들고 간다고 바로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에르메스 매장에서 특정 가방을 제안받으려면 구매 실적이 필요하며, 가죽 백 외에도 식기, 의류, 신발, 스카프 등 다양한 제품을 구매한 이력이 일정 수준 이상 쌓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셀러’와의 관계가 중요해지며, 결국 버킨 혹은 켈리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자 입장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실적 없이 신품을 구하고 싶다면 리셀 시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리셀 가격은 보통 정가의 2~3배 수준이다.

 

이렇듯 에르메스는 단순히 제품 가격이 높아서 명품이 아니라, 철학·과정·장인 정신·희소성·독립성·전통·브랜드 권위가 결합된 상징적 하우스다. 수많은 브랜드가 마케팅과 로고를 통해 ‘명품처럼 보이는’ 전략을 취하는 시대에도, 에르메스는 수공업 방식과 책임 있는 제작, 그리고 장기적 고객 관계를 유지하면서 진정한 명품의 정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에르메스는 종종 “최상의 단어”로 사용된다. 

 

에르메스는 브랜드 철학과 운영 방식에서도 재무적으로도 독보적인 평가를 받는다. 시장에서도 에르메스는 동종 업계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프리미엄을 부여받으며, PER 역시 타 럭셔리 그룹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는 단순한 판매 실적 이상의 가치를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지면서 에르메스는 1837년의 작은 마구 공방에서 출발해 2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장인 정신, 독립성, 철학, 희소성이라는 기반 위에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현재의 위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에르메스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브랜드를 이어가며, 소비자에게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과 세계관을 제공하는 하우스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