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스토리룸

프라다, 반전의 역사로 완성된 지적 럭셔리

marginata 2026. 1. 4. 11:15

프라다, 반전의 역사로 완성된 지적 럭셔리

이탈리아 브랜드인 프라다(PRADA)는 오늘날 가장 지적이고 실험적인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전통적이었다. 프라다는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마리오 프라다마르티노 프라다 형제가 문을 연 가죽 제품 상점 프라텔리 프라다(Fratelli Prada)에서 시작됐다. 초기 매장은 핸드메이드 가죽 제품과 영국에서 수입한 고급 핸드백, 트렁크를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당시 마리오 프라다는 여성이 사업에 관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가족 중 여성은 매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들은 가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결국 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가 회사를 이어받아 약 20년간 프라다를 운영했다. 프라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이렇게 여성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등장, 브랜드의 정체성이 바뀌다

1977년, 루이자 프라다의 딸이자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며 프라다는 완전히 다른 브랜드로 탈바꿈하였다. 당시 미우치아 프라다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연극과 예술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로, 전통적인 명품 경영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십대 후반부터 가죽 제품 사업을 시작했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손잡고 영국산 제품 수입을 중단하고, 프라다만의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1979년, 베르텔리의 경영 감각과 미우치아의 디자인 철학이 결합된 백팩과 토트백 세트가 출시되며 전 세계 백화점과 부티크에 진출한다. 이는 프라다가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나일론 백, 럭셔리의 개념을 뒤집다

1984~1985년 프라다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나일론 백이 등장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당시 명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로 여겨졌던 산업용 나일론을 사용해 검은색 토트백과 신발을 선보였다. 그리고 1985년, 이 소재로 만든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브랜드는 급성장한다.

이 시기 프라다는 플로렌스, 파리, 마드리드, 뉴욕으로 매장을 확장했고, “비싸야만 럭셔리인가?”라는 질문을 패션계에 던졌다. 기능적이고 절제된 디자인, 검정 중심의 색감은 프라다의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1987년,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결혼했고, 같은 해 여성용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한다. 길게 떨어지는 허리선, 좁은 벨트, 절제된 실루엣은 당시 화려함을 추구하던 패션계와 명확히 대비되었다. 깔끔한 선, 우아한 원단, 최소한의 색상 선택은 프라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브랜드 확장과 위기, 그리고 재도약

1992년, 프라다는 젊은 소비자를 겨냥한 세컨드 라인 미우미우(Miu Miu)를 론칭한다. 이어 1990년대 중반에는 남성복 기성복 라인을 선보이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이 시기 프라다는 전 세계 약 40개 매장 중 절반가량이 일본에 있을 정도로 일본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2000년대 초반, 일본과 미국에서 명품 소비가 둔화되며 자금난을 겪는다. 이후 중국이 새로운 핵심 시장으로 떠오르며 프라다는 다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2007년에는 한국의 LG전자와 협업해 프라다폰을 출시하며 패션과 테크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1824년부터 이어져 온 밀라노의 전통 제과점 파스티체리아 마르체시를 인수했다. 그러나 같은 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 가죽 제품 판매가 급감하며 위기를 맞았고, 순이익이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해 매장 확장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라프 시몬스 합류, 새로운 체제

2020년, 프라다는 라프 시몬스(Raf Simons)를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다. 1인 체제로 운영되던 프라다에 외부 디자이너를 동등한 파트너로 합류시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사람은 2021 S/S 컬렉션부터 프라다의 디자인 전반을 함께 이끌고 있다.

이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후계를 염두에 둔 결정으로 해석되며, 전통과 실험을 동시에 유지하려는 프라다 특유의 전략을 보여준다. 한편 2020년대 들어 프라다는 전 제품군의 가격을 상당 폭 인상하며 하이엔드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22년 12월,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아들 로렌조 베르텔리에게 원활하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라다 쇼, 패션계의 등용문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프라다 패션 쇼는 업계 최고의 쇼로 평가받았다. 컬렉션 자체의 완성도뿐 아니라, 모델 캐스팅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라다는 스티븐 마이젤, 이탈리아 보그와 협업하며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으며, 그로인해 프라다 쇼에 서는 것은 모델들에게 ‘성공 보증 수표’로 여겨졌다

무명 모델이라도 프라다 쇼에 한 번 서면 업계의 시선이 달라졌고, 반대로 유명 모델이라도 단순한 인지도만으로는 캐스팅되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까지 프라다는 ‘금수저 모델 없는 쇼’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2019년 이후 카라 델러빈, 지지 하디드, 켄달 제너 등 유명 모델들이 등장하며 캐스팅 기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2021년 이후에는 신인 모델 위주의 실험적 캐스팅을 시도했지만, 과거만큼의 파급력을 유지하지는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라다가 남긴 것

프라다는 언제나 유행의 정반대에서 출발해 유행을 만들어온 브랜드였다. 가죽에서 나일론으로, 화려함에서 지성으로, 단일 디자이너 체제에서 공동 크리에이티브 체제로. 프라다의 역사는 반전의 연속이었고, 그 안에서 브랜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해 왔다.

프라다는 단순한 명품이 아니라, 패션을 통해 사고방식과 태도를 제시하는 브랜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