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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UNIQLO), 유니크하고 저렴하게, 누구나 매일

유니클로(UNIQLO), 유니크하고 저렴하게, 누구나 매일유니클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SPA(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 그룹의 핵심 자회사로 자리해 왔다. 이름은 ‘유니크하고 저렴한 옷(Unique Clothing)’에서 출발하였고,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성(Universal)’의 의미도 함께 담았다고 알려져 있다. 본사는 일본 야마구치현에 위치해 있으며, 기본에 충실한 옷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전략을 꾸준히 밀어붙여 왔다. 시작은 작은 지역 매장이었다유니클로의 뿌리는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던 ‘오고리 상사’라는 지역 소매점이었다. 야나이 타다시 회장은 아버지 야나이 히토시가 운영하던 이 사업을 1984년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장..

나이키, 스우시 로고의 탄생

나이키 스우시 로고의 탄생과 ‘브랜드가 되는 상징’의 역사나이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단연 스우시(Swoosh) 로고였다. 단순한 곡선 하나가 운동 브랜드의 상징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인지되는 시각 언어로 자리 잡기까지는 의외로 소박한 출발점이 존재하였다. 35달러에서 시작된 스우시의 기원 스우시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던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뢰를 받은 뒤 약 17시간 30분가량 작업했고, 그 대가로 35달러를 지급받았다는 일화가 널리 전해져 왔다.흥미로운 점은 “처음부터 35달러로 정해진 계약”이라기보다 작업 시간에 따른 지급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요지는 당시로서는 매우 작은 비용으로..

알렉산더 맥퀸, 패션을 예술로 만든 남자

패션을 예술로 만든 남자, 알렉산더 맥퀸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 1969년 3월 17일 ~ 2010년 2월 11일)은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패션계에서 ‘악동’이자 ‘천재’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패션을 단순한 의복의 영역이 아닌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끌어올린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 패션 하우스 지방시(Givenchy)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설립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알렉산더 맥퀸의 초기 작품은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옷에 대한 모독”으로 비쳤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시..

빨간 밑창이 만든 전설, 크리스찬 루부탱

빨간 밑창이 만든 전설, 크리스찬 루부탱 크리스티앙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1963년 1월 7일~)은 프랑스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고급 스틸레토 슈즈를 중심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의 창립자이다. 그의 신발은 광택감 있는 빨간색 옻칠 밑창으로 유명하다. 이 ‘레드 솔(red sole)’은 루부탱을 상징하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여러 패션 하우스를 오가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였고, 이후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슈즈 매장을 열며 브랜드를 시작하였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연기한 캐리 브래드쇼는 시즌 3부터 6까지 수차례 루부탱의 구두를 착용하였다. 이 외에..

셀린느(CELINE), ‘아동 신발’에서 ‘하이엔드 하우스’로

셀린느는 ‘아동 맞춤 신발’에서 출발해, 피비 파일로의 모던 미학과 에디 슬리먼의 리브랜딩·확장을 거치며, 이제 라이더 체제에서 다음 균형점을 찾는 하우스다. 셀린느(CELINE)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명품 패션 하우스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지금의 이미지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CÉLINE’이라는 표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지금도 관용적으로 ‘셀린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브랜드 이름이 주는 세련된 이미지와 달리, 셀린느는 처음부터 화려한 패션 브랜드로 출발하지 않았다. 셀린느는 1945년, 셀린 비피아나와 남편 리샤 비피아나 부부가 파리에서 문을 연 작은 부티크에서 시작됐다. 놀랍게도 이곳은 여성복이나 가방이 아닌 맞춤 아동용 신발을 제작하던 매장이었다. 아이들의 ..

패션계의 악동 장폴고티에

패션계의 악동, 혁신의 아이콘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패션은 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 서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는 기존의 규칙을 과감히 부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인물로 손꼽힌다. ‘패션계의 악동’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성별·계급·전통이라는 경계를 허물며 패션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왔다. 그의 별명은 패션의 규칙을 뒤집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태도에서 비롯됐다.남성에게 치마를 입히고, 코르셋을 런웨이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거리의 '평범한 사람'을 마네킹처럼 무대에 세우며 장 폴 고티에는 언제나 '패션이 지켜야 할 선'을 의도적으로 흔들었다. 장 폴 빅터 라울 고티에는 파리 근교 바뉴에서 비교적..

프라다, 반전의 역사로 완성된 지적 럭셔리

프라다, 반전의 역사로 완성된 지적 럭셔리이탈리아 브랜드인 프라다(PRADA)는 오늘날 가장 지적이고 실험적인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전통적이었다. 프라다는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마리오 프라다와 마르티노 프라다 형제가 문을 연 가죽 제품 상점 프라텔리 프라다(Fratelli Prada)에서 시작됐다. 초기 매장은 핸드메이드 가죽 제품과 영국에서 수입한 고급 핸드백, 트렁크를 판매하는 상점이었다.당시 마리오 프라다는 여성이 사업에 관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가족 중 여성은 매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들은 가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결국 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가 회사를 이어받아..

톰브라운, 가장 보수적인 수트의 재해석

톰 브라운, 가장 보수적인 수트의 재해석 톰 브라운(Thom Browne, 1965~)은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브랜드 톰 브라운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다. 그는 전통적인 남성 정장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현대 패션에서 ‘수트’라는 아이템이 지닌 의미를 근본부터 다시 묻는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빨강, 흰색, 파랑의 삼색 그로스그레인(RWB)과 네 줄의 4-Bar 스트라이프는 오늘날 톰 브라운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언어다.배우를 꿈꾸던 청년에서 디자이너로톰 브라운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엘렌타운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윌리엄 알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노터데임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수영팀 선수로 활동할 만큼 ..

이브 생 로랑, 패션을 해방시킨 디자이너의 삶

이브 생 로랑, 패션을 해방시킨 디자이너의 삶 이브 앙리 도나 마티외 생 로랑(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t)은 1936년 8월 1일,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나 2008년 6월 1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다. 한국에서는 흔히 ‘입생로랑’으로 불리지만, 정확한 표기는 이브 생 로랑이다. 그는 20세기 패션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오트 쿠튀르를 시대와 사회로 끌어내린 혁신가였다.디올의 후계자로 등장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젊은 시절을 오랑에서 보내며 일찍부터 패션과 예술에 재능을 보였다. 파리 의상 조합 학교에 잠시 재학한 뒤, 1955년 보그 프랑스 편집장이던 미셸 드 브뤼노프의 눈에 띄어 크리스티앙 디올(C..

조나단 앤더슨, 경계를 허물며 시대를 설계하는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경계를 허물며 시대를 설계하는 디자이너 1984년 북아일랜드 마게라펠트 출신인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아일랜드 럭비 국가대표 출신 아버지와 영어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과 스페인 이비자 섬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랐다. 그가 처음부터 패션디자이너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한때 배우의 꿈을 꾸며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패션에 매료되어 패션디자인을 전공하였다.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브라운 토마스 백화점에서 근무하며 런던 패션칼리지에서 남성복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에는 디자인이 아닌 연기 경력을 쌓았다. 워싱턴 D.C.의 스튜디오 극장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의상 디자..